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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상

@faithindevilry

죽지 않고도 사경死境을 헤맬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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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endar_today28-05-2022 18: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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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판 땅에서 핏물이 흘러 운동화 코를 적시고, 군데군데 파인 구멍 안으로 이제 막 형체를 잃기 시작한 것들을 보면서 내가 취한 건지 아닌 건지 구분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었다. 어떤 구멍에서는 손이 나오고, 어떤 구멍에서는 발이 나오고. 그래도 머리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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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내가 땅에 묻혔다면 제일 먼저 대가리부터 내밀었을 텐데. 안 그러면 숨이 너무 막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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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나라에서는 오로라를 본다는데 이렇게 더운 나라에서는 현기증이 나서 환각을 보나 보다. 치우지 않은 맥주캔들이 어지럽게 발치에 쏟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도로 흙을 덮고 눕겠거니. 그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다 쓸려가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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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한 것처럼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지문을 채취하고 사정을 청취할 것도 없었다.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 빠르게 오가는 사이 채워지는 수갑, 거칠게 끌려가는 몸, 어지러운 정신……. 사람을 죽여 놓고 이렇게 태연한 놈은 처음 본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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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성인 남자 허리까지 묻힐 정도로 구덩이를 팠는데. 어설프게 한국말을 구사하던 통역사가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 자기 발로 걸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뒷처리가 엉망이라는 말을 전해 줬을 땐 코웃음을 쳤다. 네, 다음엔 더 깊게 파겠습니다. 통역사는 내 말을 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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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잡혔을 거라고 했다. 아는 것도 없는 놈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렇게 묻었냐고. 그때 깨달았다. 아, 일을 할 때는 조금 더 깔끔하게 해야겠구나. 다른 놈들은 어떻게 묻는답니까. 나는 다시 물었다. 통역사는 이번에도 내 말을 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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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현지 경찰은 그렇게 깐깐하지 않고 한국과 수사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보안이 엉망이라는 점이었다. 재판을 받기 위해 이송되던 길에 버젓이 범죄자 몇 명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그 전에 유치장 담을 넘은 놈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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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거기에는 돌돌 말린 지폐 몇 뭉치가 들기는 했다. 환율에 능하지 않았으니까 한국 돈으로 얼마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 정도면 싸게 먹힌 셈으로 쳤다. 그렇다고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고 하기엔 글쎄.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만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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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강박적으로 상대방 목덜미를 확실하게 노렸다. 정말로 죽은 사람이 땅에서 걸어나오면 안 되니까. 우기가 긴 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건 매번 대량의 방수포를 사기에도 좋다는 뜻이었다. 다시는 운동화가 젖지 않게, 다시는 악취가 느껴지지 않게, 다시는 환각 따위라 착각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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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수포로 둘둘 말아 덕트 테이프로 마디마디를 감고 나면 꼭 장의사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염을 하거나 명복을 빌지는 않았다. 그것마저 흔적으로 남아 꼬리가 잡히긴 싫어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것도 결국 거짓말이다. 죽은 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자신의 마지막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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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그렇게 깊게 땅을 파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게 묻었는데도 가끔은 덜미가 잡혔다. 수상한 차, 수상한 인상, 수상한 옷, 수상한 동행. 그럴 때마다 자꾸 돈이 나갔다. 주머니가 새는 게 싫어서 자연스럽게 흔적을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지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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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한 올, 아주 희미한 지문, 또렷하지 않은 발자국…… 도처에 내가 나를 잡아먹기 위해 몸을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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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게 새겨지도록 내가 방치해 둔 상처가 다시 하나, 둘, 셋, 넷, …… 이래도 비가 자주 쏟아지는 나라에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