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전히 남겨진 편지를 제대로 읽을 자신이 없어 그러다간 현실이 되고 결국 속절없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아서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 당신 이름 석 자에도 좋은 추억인 양 치부할 수 있을 때가 온다면 그땐 한 문장 한 문장 점수 매겨 줄게 당신이 얼마나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했을지
한동안은 습관처럼 침대 옆자리를 더듬으며 당신 흔적을 찾았어 대체 그놈의 시간은 언제쯤 해결이란 걸 해 줄 건지 걔는 내가 눈물로 지새운 밤이 몇이나 되는 줄은 아나 모르겠네 앓는 건 나 하나로 족해 당신은 금방 훌훌 털어 버릴 수 있길 그렇다고 너무 멀쩡하진 말고 적당히
받지도 않을 전화 두 통 답장 한 번 오지 않는 문자 서너 개 그 무엇도 진심 아니었던 적 쉬웠던 적 한 번 없었는데 응답은커녕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숫자를 볼 때면 수신자도 무응답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서 당신을 너무 잘 아는 탓이겠지만 결국 내 미련에 내가 불 붙인 꼴이지
벚꽃 아래서 사실 관계 명확히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 사이는 왜 이리 흐릿해졌는지 이젠 좀 묻자 당신은 창밖도 안 봐? 벚꽃잎 다 떨어지다 못해 장미 피는 계절인데 내 생각은 좀 했니? 고집도 적당히 부려야지 권력 남용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한 거면 계속 그렇게 굴고
난들 받지도 않는 부재중 여럿 남기는 게 쉬웠을까 봐 할 거면 제대로 해 괜히 사람 숨 막히게 굴지 말고 지나온 계절이 몇 개인데 적어도 유구한 습관 숨길 노력이라도 했어야지 근본 없는 거짓말에 속어 넘어가 줄 줄 알았던 거면 군복 벗을 준비부터 하고 한가하게 장단 맞춰 줄 생각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