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숲을 혼자 걸을 수 있을 무렵부터
일요일이면 성당에 간다
말끔하게 빗은 머리를 숙이고 오르간을 연주한다
너는 참 성실하구나
신앙 대신 성실을 쌓는다
나의 성실은 기도와 거리가 멀다
신은 바쁠 테니
반주자의 취업이나 일신상의 사유 같은 건 돌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별로 중요한 일도
태민이가 우리에게 음악과 무대로 행복을 주고, 우리는 그 행복을 발판 삼아 더 큰 응원을 보내는 선순환에 대해 생각해본다. 오직 이런 선순환만 존재하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은 다양한 감정을 먹고 자라기에 그를 어떤 밀실에 가두려들면 안되겠지만, 삶이 지칠 때면 어쩔 수 없이
사양산업이라고 하면 으레 죽을 사를 떠올리지만, 사양斜陽은 저녁 나절의 햇빛을 의미한다. 그걸 알고 흔히 사양산업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저물어가는 것들에 정감과 애처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게 한자어의 아름다움이다.
한자어의 조합을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사실 모두가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걸 본다는 거, 그런 다양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라는 태민의 선언은 니체의 관점주의 철학과 닮아있음.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이 보여주듯, 세상에 모든 사물을 객관적이고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절대자의 시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