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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물속 골리앗, 두근 두근 내인생. 인상깊게 읽은 김애란 구절이 있다면 제보해주세요.

ID: 263585521

calendar_today10-03-2011 09: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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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 하면 푸른 숲이 떠오른다. 나무가 많은 숲 그리고 젊은 숲. 그 숲의 나무들은 모두 지하철 2호선을 표시하는 연녹색을 띠고 있다. 보통의 나뭇잎은 그보다 짙지만, 어쩐지 신림의 나무들만은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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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식 선배의 글씨였다. 그것은 선배가 좋아했던 시의 마지막 구절이었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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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나는 베개 하나를 같이 베고 누웠다. 어머니의 몸뚱이에선, 계절의 끝자락, 가판에서 조용히 썩어가는 과일의 달콤하고 졸린 냄새가 났다. 세계는 고요하고 몸은 녹진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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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처음 맞은 날, 후배는 작은 손가방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후배가 갖고 있던 것은 자신이 그녀의 대학 후배라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만났고, 만난적이 있다는-믿을 수 없을 만큼 모호하고 상징적인 명함 한 장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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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산다는 건 서로를 조금씩 견디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침이면 서둘러 학교에 갔고, 밤이면 막차에 몸을 싣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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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음을 들었을 때, 처음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겐 어머니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내게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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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는 머무는 사람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혹 오래 머물더라도 사람들은 그곳을 '잠시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도, 재수생 언니도, 민식이도, 총무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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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으니 한번만 지각할까. 그래, 성실함이란 미래의 실수를 위한 달란트 같은 것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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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날만은 '평생 이 남자의 하중을 견디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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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63빌딩이다." 내 마음의 데시벨은 너무 낮아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63빌딩이다-라고. 나는 63빌딩을 보자 서울에 온 것이 실감 났고 비로소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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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여자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던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가 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때가 그순간이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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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기를 틀자 쏴아-하고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린다.그녀는 문득,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수도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샤워기 아래서 그것을 아주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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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뭘 하실 생각이세요?" 나는 망설이다 대학원에 갈 거라고 말한다 꼭 그럴 생각은 아니지만 계획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사실'안되면 대학원이라도 가지'하는 생각도 있다. 학위란 몇 천만원짜리 자격증 같은 거니까 따놔서 나쁠 게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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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했던 걸까. 내가 잠든 새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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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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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친밀감을 갖게 된, 그리하여 거기서 조금만 더 서로를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우스갯소리와 거짓말이 골목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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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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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택시운전을 힘들어했다. 박봉, 여자 기사에 대한 불신, 취객의 희롱. 그래도 나는 어머니에게 곧잘 돈을 달라고 졸랐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새끼가 속도 깊고 예의까지 발라버리면 어머니가 더 쓸쓸해질 것만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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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전봇대에서 떼어낸 여러 장의 월세 '찌라시'를 만지작거리며 동생에게 부끄러운 듯 고백했다. "난 있잖아. 천만 원이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줄 알았어." 동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