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청명은 그 셋한테 축하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고 애당초 생일이란 게 그렇게 축하받을 일인가? 했음 좋겠다... 어린 시절 청문에게서 처음 생일이란 게 어떤 건지 들었을 때

'하지만 사형, 저는 태어난 날을 모르는걸요?'
'그러면.... 청명이는 화산에 온 날을 생일로 삼자꾸나.'
'태어난 날이 아닌데 괜찮은 거예요?'
'그럼. 생일은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를 만나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축하하는 날이니까.'

이런 대화 주고받고 반쯤 의무적으로 생일 챙기고 챙김받을 것 같지... 그러면서도 내심 태어난 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어차피 만물이 나고 죽는 것도 자연 아닌가? 생각했음 좋겠네 머리 좀 굵어지고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청문한테 물어봤다가

'나고 죽는 것은 모두 자연의 뜻이 맞지. 하지만 청명아,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더냐.'
'어떻게 사느냐요?'
'그래, 똑같은 사람이어도 양민이 될 수 있고 산적이 될 수 있고 그를 잡는 관군이 될 수도 있지 않니.'
'그렇죠?'
'그러니 나는 네가 생사가 아닌 삶에 주목했으면 좋겠구나.'

여전히 사형의 말은 너무 어렵고 그래도 또 맞는 말이긴 한 것 같아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청명이... 먼 훗날 전쟁으로 피폐해진 일상 중 당보가 슬렁슬렁 다가와서 술을 내미는 거야 맨날 소독용이라고 구박하던 땐 언제고? 하고 쳐다보니까 냅다 형님 품에다 술병 안겨주는 당보

'웬 술이냐?'
'내 이럴 줄 알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아십니까?'
'...마교 주교 잡으러 가기 전날?'
'어휴. 댁 생일이잖소.'

그제야 날짜를 가늠해보는데 과연 10월 10일이야 당보는 그래 요즘 날이 좀 선선해지긴 했지... 하는 청명이 어이없는 눈으로 내려보고 있음

원래도 그랬지만 전쟁 때문인지 갈수록 인간성이 닳아 없어지는 형님을 보고 있자면 가슴 한켠이 좀 답답하기도 해

'오늘은 특별히 술 마셔도 봐드리겠습니다.'
'참나. 내가 봐주는 거거든.'
'거 그냥 곱게 좀 넘어가주면 덧납니까?'
'오냐. 고맙다.'

피식 웃는 청명을 가만 내려보던 당보 형님이 술 한 모금 마시는 거 지켜보다가

'형님.'
'또 왜.'
'생일 축하드립니다.'
'뭘 다시 말하기까지 하냐.'
'살아 있어주셔서 감사하단 뜻입니다. 아시잖습니까.'
'.......'
'귀한 술을 남겨둘 터이니, 내년에도 후년에도 대작이나 하십시다.'

당보의 바람은 반만 이루어졌겠지 다음해 청명의 생일은 함께 보낼 수 있었지만 그 이듬해 청명의 생일은 혼자였거든 당가의 한 무인이 생전 암존께서 부탁하신 일이라며 가져온 술을 혼자 비우면서 청명은 그제야 장문사형이 예전에 말했던 생일을 왜 축하하는지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음

그리고 또 그 이듬해 청명의 생일이 오기 전 정마대전은 정파의 승리로 끝이 났고 누구도 십만대산을 내려오지 않았는데......

청명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연무장으로 발을 디뎠음 새벽수련을 마치고 내려왔더니 무슨 일인지 화산의 제자들이 연무장에 모여 있는 거야

'뭣들 해?'
'아 조용히 좀 해봐! 청명이 놈 내려오기 전에 축하 준비를 마쳐야....'
'처, 청명아?'
'너 왜 이렇게 일찍 내려왔어?'
'아니 사숙 청명이 내려올 시간 맞습니다!'
'야 이 놈들아 내가 시간 확인 철저하게 하랬지!'

이러고 또 시장 바닥만큼이나 시끄러워지는 연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