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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인간 John Grib

@john_grib

일기장 겸 독서록.

ID: 73291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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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 러시아 유학도 당시에 소련 망했는데 사회 붕괴와 혼란의 시기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예술을 할까? 싶어서 갔는데 러시아 배우들이 사람답게 열심히 멋지게 사는 걸 고민하고 있길래 그거 보고 영향 많이 받았대잖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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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전에는 교통수단이 워낙 느려서 많은 국지적 시장들에서는 상품의 보관이 필수적이었다. 1590년경에 이르면, 암스테르담은 "교환의 계서제"의 꼭대기에 자리 잡았고, 세계의 중심 창고이자 상업 금융의 허브(hub)가 되었다. "

"16세기 이전에는 교통수단이 워낙 느려서 많은 국지적 시장들에서는 상품의 보관이 필수적이었다. 1590년경에 이르면, 암스테르담은 "교환의 계서제"의 꼭대기에 자리 잡았고, 세계의 중심 창고이자 상업 금융의 허브(hub)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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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공황이 올 때마다 결과적으로 뉴욕 시는 아메리카 대륙의 금융과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1837년 뉴욕은 필라델피아나 보스턴과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경쟁 상태에 있었다... 뉴욕과 다른 도시들 사이의 경쟁은 이제 중단되었다. 근래에 일어난 1857년 런던과 뉴욕 사이의 경쟁은 엄청났지만..."

"매번 공황이 올 때마다 결과적으로 뉴욕 시는 아메리카 대륙의 금융과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1837년 뉴욕은 필라델피아나 보스턴과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경쟁 상태에 있었다... 뉴욕과 다른 도시들 사이의 경쟁은 이제 중단되었다. 근래에 일어난 1857년 런던과 뉴욕 사이의 경쟁은 엄청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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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전자의 본보기였으나, 1945년의 패전 이후에는 후자가 되었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전자의 본보기였으나, 1945년의 패전 이후에는 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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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생산을 낳지만 생산은 또 전쟁을 일으킨다" "경제적 진보가 치명적인 무기도 함께 가져다 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평화는 생산을 낳지만 생산은 또 전쟁을 일으킨다"

"경제적 진보가 치명적인 무기도 함께 가져다 주리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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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인의 개념화된 장기 파동. 주기에 ‘전쟁 정점’, ‘전쟁의 저점’처럼 전쟁이 들어있는 것이 흥미롭다. 반면 전쟁 정점과 기술혁신 저점이 같이 붙어있는 것은 섬뜩하다.

골드스타인의 개념화된 장기 파동. 주기에 ‘전쟁 정점’, ‘전쟁의 저점’처럼 전쟁이 들어있는 것이 흥미롭다. 반면 전쟁 정점과 기술혁신 저점이 같이 붙어있는 것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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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권력에 대한 모델스키의 장기 사이클들. 세로축은 상대적인 해군력 지표. 2차대전 무렵의 미국 해군력 상승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권력에 대한 모델스키의 장기 사이클들.

세로축은 상대적인 해군력 지표. 2차대전 무렵의 미국 해군력 상승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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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베네치아가 15세기보다 16세기에 더 부자였고 금융에 몰두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그 이행은 무역에서 금융으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과시소비로, 예술분야로, 건축분야로도 일어났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15세기보다 16세기에 더 부자였고 금융에 몰두해 있었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그 이행은 무역에서 금융으로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과시소비로, 예술분야로, 건축분야로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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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포함 독서계에서 정치 얘기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게 12.3 계엄령 3번이 뭐엿게요 우리 같이 좋은 책 읽고 악플도 개크게 달고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고 갑론을박도 하고 이걸 이어나가려면 정치 얘기도 계속 해야됨 당위성이 있다

근데 저 포함 독서계에서 정치 얘기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게
12.3 계엄령 3번이 뭐엿게요
우리 같이 좋은 책 읽고 악플도 개크게 달고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고 갑론을박도 하고 이걸 이어나가려면 정치 얘기도 계속 해야됨 당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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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15세기 전반에 자국 해안을 벗어나서 멀리 외국으로 진출함으로써 부국으로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선박건조창과 항해학교 덕분에 엔리케 왕자는 서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 부근까지 항해해 가서 금과 노예무역을 하였으며, '발견의 시대'(대항해 시대)의 막을 올렸다."

"포르투갈은 15세기 전반에 자국 해안을 벗어나서 멀리 외국으로 진출함으로써 부국으로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선박건조창과 항해학교 덕분에 엔리케 왕자는 서아프리카의 보자도르 곶 부근까지 항해해 가서 금과 노예무역을 하였으며, '발견의 시대'(대항해 시대)의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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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50년간 지속된 포르투갈 무역의 성공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200만 명을 겨우 상회하는 정도였다." 15~17세기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았던 포르투갈이 그 당시에 인구가 200만 밖에 안 됐다니...

"거의 150년간 지속된 포르투갈 무역의 성공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포르투갈의 인구는 200만 명을 겨우 상회하는 정도였다."

15~17세기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았던 포르투갈이 그 당시에 인구가 200만 밖에 안 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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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은 후일 자기 이름을 따서 불리게 될 해협을 지나 1520년 서쪽으로 항해했고, 1521년 필리핀 제도에 닿았다"

Heejoon Lee aka 와페 (@galadbran) 's Twitter Profile Photo

기계인간 John Grib 과거 유럽 국가별 인구 추산이 위키피디아에 있네요~ ko.wikipedia.org/wiki/%EC%9C%A0… 역사적 통계 부분. 포르투칼이 1600년 백만에서 1700년 이백만으로 두배 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