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B: 나는 9S에게 부축받아, 천천히 일어섰다.
9S: 갸날픈 몸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이 전해진다.
2B: 우리는 다시 여정을 떠나게 되겠지.
9S: 기계 생명체를 쓰러뜨리 위해서도,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야.
2B: 이 세계에는 애초 의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9S: 우리는 저주받고 있다.
정신이 아찔해질듯, 아주 먼 시대.
세계가 백염화 병에 시달리고 있을 무렵.
어느 도시 한곳에 어린 남매가 있었습니다.
여동생은 병약 했지만, 착했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을 지키겠다고 맹세 했습니다.
그 맹세가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걸 알지 못한 채...
수천년 이라는 시간을 거쳐
바닥에는 사진이 흩어져 있었다.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사진들이.
빛이 바래고 닳아 해진 풍경 속에서
즐거웠던 시절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고요한 방 안.
2B와 9S는 멈춰 선 채
잃어버린 장소의 기억에 생각을 잠겼다.
인간이 만들어낸 유원지 시설 속에서
부서진 기계들이 세상을 노래한다.
먼 옛날, 모래에 거주하고 있는 가면의 사람들이 있었다.
먼 옛날, 모래를 달리는 늑대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대지의 은혜를 모래와 바람이 빼앗아 가기 전까지는..
그들이 잃어도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흐르는 모래 속에서, 2B 일행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버려진 도시의 폐허에서.
잠들어 있는 숲의 고성에서.
우리는 보수용 부품을 찾아 헤맨다.
기계 생명체들에게는 적의가 없었다.
우리에게도 싸워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서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푸른 하늘의 자유로움과.
이슬비의 아름다움과.
햇살의 따스함.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듯..
어두운 구멍 속. 나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2B의 몸에는 점차 이상이 늘어나고 있었다.
내 블랙박스를 건네줄 수 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내려왔는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무렵, 아래쪽에 은은히 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거대한 지하 공간에 도달했다.
이성인의 함선 내부는 좁은 통로로 되어 있다.
완만한 내리막길이 파도처럼 넘실 거리며 계속 이어진다.
복잡한 패턴으로 구성된 금속질의 벽들이 마치 생물의 내장과도 같았다.
길은 같은 풍경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같은 풍경.
같은 풍경.
같은 풍경.
같은 풍경.
같은 풍경.
같은 풍경.
같은
도시는 얼어붙은 듯한 흰색으로 물들어 소리조차 없다.
하늘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눈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새겨져 있는 것은, 인간이 남긴 저주의 역사.
3465년 오리지널 게슈탈트, 마왕 사망.
3467년 폭주한 쌍둥이 모델 실험체 처형.
3631년 "인류 유산 재생 관리 기구" 설립.
4198년 마지막
인류군 마지막 비밀병기.
위성 궤도 기지 벙커.
복제된 그 장소는, 미완성인듯 뒤죽박죽한 구조였다.
수많은 케이블들이 물결치듯
바닥 위에서 얽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태고의 식물을 연상시켰다.
격납고, 통로, 엘리베이터, 사령부실.
물결치는 케이블이 바닥과 벽을 가득 덮고 있었다.
본
이성인의 함선 최심부 계층.
기계 생명체의 형상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투박한 금속관이 매끄러운 곡선을 이루며 팔 다리가 기묘한 형태로 뻗어 나간다.
그것은, 멸망해버린 인간의 모습.
그것은, 자동보병 인형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등에는 검은 금속의 날개가 돋아 있었다.
달려드는 기계